개인 블로그를 4번이나 갈아엎은 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작정하고 글을 쓴다는 건 매우 매우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아직 전통적인 글쓰기가 익숙한 사람들이에요. 여기에서 전통적이란 ‘한 번 쓰여진 글은 수정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을 뜻해요. 우리가 익숙해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방식이지요. 책이나 일기, 블로그, 트위터까지 모두 여기에 속합니다.
당시에는 최신 트렌드였지만 지금은 과거의 유물이 된 글이 너무나 많습니다. 검색 시스템이나 AI 조차 수 년 전 글을 가져와 출처로 들이미는 것을 종종 보았습니다. 저는 산더미처럼 짓눌린 정보의 바다에서 흥미롭게 큐레이팅된 글을 원했습니다.
디지털 정원이란 무엇인가요?
디지털 정원은 농사를 위해 잘 가꾸어진 땅이라기보다는, 얽히고 설켜 성장하는 덩어리에 가깝습니다. 디지털 정원은 서로 연결된 아이디어와 생각들의 네트워크이며, 그것들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에 따라 뭉쳐져 있습니다.
jzhao.xyz의 Networked Thought
디지털 정원은 제품 사용설명서처럼 깔끔한 목차와 내용으로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두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난잡하고 불안하게 얽힌 활자 사이로 길을 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디지털 정원의 모든 글은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것도 강하게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야 합니다. 폴더별로 예쁘게 배치하는 것보다는 글과 글이 유기적으로 얽혀 인위적인 혼란을 일으키게 하는 게 목적이에요.
디지털 정원은 어떻게 가꾸나요?
워렌 버핏은 가장 중요한 목표 5개 빼고는 모두 버리라고 말했지만 이 말을 지키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이런 노트를 가꾸다보면 폰트 크기나 색깔 같은 자잘한 것들이 계속 눈에 들어오거든요. 다른 멋있는 분들의 노트를 발견하면 또 줏대없이 따라가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그래서 원칙을 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 일반적인 지식은 적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나만의 나무위키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정말 수차례 시도하다가 실패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 해요.
일반적인 지식은 외부 링크로 대체합니다. 대단한 사람들의 멋있는 글은 그 자체로 남기고 싶어요. 대신 저는 apt vs apt-get 같이 제가 살면서 무심코 넘긴 물음표를 해결하는데 더 집중하려고 해요.
2. 매일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제가 사랑하는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책에서 기억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작가가 어릴 적 집에서 반드시 지켜야 규칙이 두 가지 있었어요. 첫째는 매일 밤 가족이 다같이 모여 저녁을 먹어야 하고요. 둘째는 그 자리에서 각자 오늘 배운 것 하나를 이야기해야만 했습니다. 작가는 뭐라도 하나 이야기하기 위해 백과사전을 뒤적거렸고 “터키의 인구는 8000만 명이에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매일 적어도 하나씩은 무엇이든 배웁니다. 호수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지식은 이어진 거미줄을 따라 퍼집니다. 아무 문서 하나를 펼치세요. 한 문장을 고치다보면 그것과 이어진 페이지들을 읽게 될 거에요. 그렇게 따라가며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을 해소해보세요.
질문을 하면 관심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궁금하기도 하지만 물음을 가지면 더 깊게 상대를 관찰할 수 있어요. 저는 제 하루를 사랑하기 위해 매일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그런 작은 물음과 아이디어을 모으다보면 어느새 커져 있지 않을까 두근거리네요.
3. 지식을 나열하지 말고 글을 쓰세요.
정보가 범람하는 요즘 같은 시대를 한 단어로 축약하면 tl;dr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일을 하다보면 글을 단락으로 쓸 일이 잘 없습니다. 아래처럼 직관적이고 간략한 글쓰기를 더 미덕으로 여기지요. 특히 엔지니어는 메일을 쓸 때 안부인사 대신 본론을 먼저 꺼내고, 사소한 답변은 이모티콘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팅 요청 건
- 내용 : 서비스 최종 리뷰 미팅
- 일자 : 2025년 04월 26일
- 사유 : 신규 서비스 출시 전 최종 점검 및 체크리스트 공유
이 규칙 때문에 글쓰기를 주저할까 우려됩니다. 솔직히 ‘글’을 쓰는 건 장황하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하지만 계속 나열식으로 쓰면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장과 문장을 넘기는 법을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 합니다.
또 높임말에 구어체를 쓰는 걸 실험해보려고 합니다. ‘~한다’ 어미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략하고 단정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정보 전달에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합니다’의 부드러움도 한 번 실험해보고자 합니다. 말투가 부드러우면 글이 술술 읽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거든요.